3월26일 목요일

 

비가 제법 많이 내린다.날씨도 쌀쌀하다.

아침에 인계동에 책공부하러 갔다가 점심 먹고 한숨 돌리니 비가 걷힌다.비도 안오고... 아무래도 오늘 감자 심으러 갔다 와야겠다.

어제 ,난 씨감자가 뭔가 싶어 텃밭을 오래 하신 성당 자매님께 여쭤봤더니 싹이 나는 감자가 씨감잔데 싹이 나오는 부분을 조각내 심으면 된다고 하신다.가만 생각해보면 나는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 알고 있는줄 아는데 실제로 모르고 있는게 너무 많은것 같다...

생협에 알아보니 이제 제주 햇감자만 나온단다. 조합원만 상대하는 마을 한살림 매장에 겨우 부탁해서 겨울감자 두 봉지를 샀다.

오늘은 물 한통과 목장갑.호미를 제대로 챙겨 나갔다.대낮인데도 바람이  많이 불고 춥다.그런데다 요며칠 몸을 너무 썼는지 입술이 부풀어 오르고 팔다리가 무거워서 자전거 타기가 좀 싫어진다.그래도 오늘 감자 안심으면 너무 늦어질거 같다.모자.목도리를 단단히 챙기고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아~역시 나오길 잘했어!

텃밭에는 아무도 없다.비온 뒤에는 밭일을 하면 안되는건가?저기 위에 밭에 올라가 봐도 아무도 없다.이 넓은 땅위에 오로지 나 혼자다.허~어쩌나 뭐부터 해야하지,일 하는거 맞나...한참을 오르락 내리락 왔다갔다 하다가 ,왔으니 일은 하고 가자 맘 먹고 호미로 다시 밭부터 일없이 일구기로 했다.마침 할아버지 한분이 자루를 둘러매고 가는데 텃밭에 가시는 모양새다.

"할아버지,저 감자 심으러 왔는데 어떻게 하는지 몰라서 그러는데 좀 가르쳐 주실래요?"

나는 말을 끝내기 무섭게 얼른 할아버지 얼굴을 쳐다봤다.눈치를 보는거다.

내 짧은 텃밭 경험에 비춰보면 밭에서 만나는 어르신들은 느긋하고 인심좋은 어르신들 보다는 대부분 땅과 수확물에 욕심이 많은 분들이고 해서 밭이나 채소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이나  나 같은 텃밭 햇병아리들에게 무척 쌀쌀맞고

때론 무섭고 사납고 그랬다.

흙에서 일하면 누구나 느긋해질거 같은데 아무나 그런건 아닌가 보다.이런 마음으로 할아버지 인상을 막 읽으려는데 쓰윽 웃는 할아버지 얼굴이 수수하다.

"감자는 가져 왔어요?"

하면서 내 밭으로 올라오신다.

"칼은 가져 왔고?"

"예!예!"

할아버지 앞에 감자와 칼을 꺼내 놓으니 어느새 앉아 감자를 요리조리 쳐다보며 싹이 나오는 곳 하나만 남기고 나머지는 베어 내고 하면서 감자를 조각내 주신다.

감자 심을 곳은 흙을 높이 두둑하게 쌓아라,구멍을 내고 30센티미터 간격으로 심으면 된다 하신다.

"두둑과 두둑 사이에 고랑은 어느 정도 하면 되나요?"

"넓으면 바람도 잘 통하고 좋지."

내게 기본을 가르쳐 주시고 할아버지 밭으로 총총 가신다.너무 고맙습니다...

나는 두둑을 네개 만들어 감자를 심었다.등산객들이 저것봐.감자는 저렇게 심는가봐 한다.어느 점잖은 어르신 두분이 서서 한참을 쳐다 보신다.얼굴에 함박웃음이 가득하다.갑자기 대구에 계신 친정 부모님이 보고 싶다.우리 엄마.아버지도 어설프게 땅 파고 있는 딸 모습을 보면 저렇게 웃으시겠지...

바람이 점점 세게 분다.비온뒤 차갑고 사람 없어 더더욱 쓸쓸해진 텃밭에 검정 비닐봉지들이 바람이 불때마다 나를 깜짝깜짝 놀라게 만든다.내가 심은 감자는 땅 깊이 깊이 묻혔다.

 

"감자 씨는 묵은 감자 칼로 썰어 심는다.토막토막 자른 자리 재를 묻혀 심는다
밭 가득 심고 나면 날 저물어 달밤 감자는 아픈 몸 흙을 덮고 자네
오다가 돌아 보면 훤한 밭골에 달빛이 내려와서 입 맞춰 주고 있네 "

(이원수 시, 백창우 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