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4일 토요일
바람이 많이 분다.나들이하기 좋은 날씨라는데 왜 나는 춥지?
씨 뿌려야하는데...빨리 갔다 와야 하는데...하면서 오전 내내 티브이 보면서 뒹굴고 있는데 어마,우짜노! 시어머님이 오신다네.이러면 주말은 완전 물 건너 가는데...어머님은 왜 하필 주말에 오시는거야...어쩌지...에라 모르겠다.밭 일부터 하자.진작에 갔더라면 좋았지...쩝.
어머님한테 밭 일이 급하다고 금방 갔다 올테니 기다리시라고 전화로 대충 둘러대 놓고 자전거를 탔다.와~역시 자전거는 나를 살려준다니까...오늘따라 굴러가는 바퀴에 내 몸이 그저 가는거 같아 더 신난다.
주말이라 산에 오르는 사람들이 많다.부부들이 눈에 많이 띈다.우리 애아빠는 일곱살짜리 아들 데리고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하고 있을텐데...쩝...
산에 오르니 제일 먼저 진달래가 나를 반겨준다.아직은 쓸쓸한 숲속에 드문드문 피어난 분홍빛 진달래가 내 마음을 살짝 들뜨게한다.
이 넓은 텃밭에는 언제 사람들이 일 하는걸까?한번도 북적이는걸 본적이 없다.모두 새벽에 일하나? 나만 맨날 한가하게 이런 시간에 일하는걸까?
아까 올때 파장시장 입구 꽃집에서 산 상추.쑥갓.근대.시금치 씨앗을 뿌렸다.근대.시금치는 처음 뿌려 보는데 근대 씨앗은 무슨 꽃송이를 말려놓은듯 모양이 특이하다.시금치는 정말 내가 뜯어 먹을 수 있을까 기대 반 우려 반이다.
내 밭 옆에 옆에서 일을 마치고 가던 할아버지가 내 밭 고랑을 보고는
"아이고 이거 아 보다 배꼽이 더 크네!!!"
하면서 기가 막혀 하신다.
사실 내가 봐도 그건 기가 막힌다.내 밭과 내 옆에 밭 사이의 경계 땅,이게 밭고랑이라 하는건가? 하옇튼 이 땅을 두고 하는 말씀이다.손바닥만한 텃밭을 일구는 사람들 기준으로 보면 내가 만들어 놓은 이 땅은 운동장이다.어째 하다 보니 이렇게 됐는데 이렇게 된 데는 심리적인 부분도 크다.
한번도 내 옆 밭 사람들을 만나본 적은 없는데 밭을 일궈 놓은 모양새가 나를 무척 긴장하게 만들고 경계하게 만든다.너무 말끔하게 다듬어 놓은 것도 그렇고 파란색 줄로 반듯하게 둘러 아무도 우리 밭에 넘어오지 말라는 단호한 신호를 보내는게 아닌가?
이런 내 추측을 뒷받침해 주는 일이 있었는데 지난 달에 급하게 몇 번 왔다갔다 하면서 돌이며 잡초며 손에 잡히는대로 고르고 뽑고 해서 그 무더기를 바로 그 경계땅에 방치한채 놔두고 왔는데 다음에 가보니 그 무더기들이 내 밭쪽으로 밀려져 있고 줄도 더 단단하고 완강하게 쳐져 있는 거다.그러니 내가 조심해줄밖에.그래 니 쪽으로는 절대 안간다 하면서 밭을 고르다 보니 그곳이 운동장이 되고 만거다...
"너무 넓조오~? 다른 밭에 흙을 가져와서 좀 더 밭을 만들까요?"
요렇게 답을 하니 할아버지는 더 기막혀 하면서 대답도 안해주고 내려가신다.뭐 그렇게 하면 되지! 고추 심을 자리만 놔두고 씨 뿌린 곳을 손보다가 번뜩 생각이 떠올랐다.그곳에다 옥수수를 심으면 되겠다.옥수수...너무 멋지다~.
그런데 씨는 휙휙 뿌려서 흙으로 슬슬 덮었는데 이렇게 가볍게 묻어도 되는건지...어째 시금치 씨앗이 자꾸 보이네...하옇튼 기다려 보면 되겠지.
너무 비가 안온다.다음엔 물을 듬뿍 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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